개괄

탈진실, 음모론, 정보 과잉, 극단의 시대
단신이 보고 믿는 것이 정말로 진실인지 질문하는 책!
뇌과학자 정신의학이 밝히는 인간 이성의 오류에 관하여 

발췌

공감가거나 명심해야할 내용들이 엄청 많아서 표시 내용이 많다.
이럴 경우 어떻게 이를 기록하고 남길 수 있는지 독후감 포멧에 고민이 필요할 듯 하다.

평균 이상 효과 :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여기는 효과
- 음모론은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것이 네 생각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 음모론은 종종 자신의 발언이 검증될 수 없기에 반박될 수도 없는 상황을 활용한다.

- 음모론이 어떤 가정에서 출발하는지 이야기한다.
즉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몸습에 속아 넘어가 원래의 진실은 보지 못한다는 것이 음모론의 대전제다.

- 많은 음모론의 공통점은 이른바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을 들먹이면서 이성의 옷을 입은 척한다는 것이다.

- 음모론은 지배적이고 공식적인 이론에 위배되거나 최소한 그런 이론에 의문이 들게 만드는 관찰을 부각한다.

- 따라서 음모로는 인식적 합리성을 가장하고 통용되는 이론에 배치되는 증거를 환기하며, 
’공식적으로‘ 제시되는 증거가 타당한지 의심한다.

- 사실 엄밀히 따지면 합리적이지 않기에 더더욱 합리성을 강조한다.

- 학문적으로 옳은 이론과 달리 음모론의 특징은 증거에 굉장히 불균등한 비중을 둔다는 것이다.

- 반면 증거를 불균등하고, 그로써 비합리적인 비중으로 대하는 것이 음모론의 지배적 원칙이다.

- 음모론은 모든 사건에서 원인 혹은 의도를 찾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이용한다. 
- 우리가 자신의 견해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을 인지 편향 중 하나로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 낙관적 편향 :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보다 미래를 실제보다 더 낙관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을 실제보다 더 건강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직업적 실패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 클러스터 착각 : 아무곳도 없는 곳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지각하는 경향
- 확신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 자신이 합리적이라는 환상은 (다른 긍정적 환상과 비슷하게) 
우리의 생존 가능성과 재생산 가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확신은 때로 틀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최선의 추측‘이다.
- 자신의 예측과 현재 들어오는 감각 데이터의 정확성을 평가하고 그것에 크고 작은 비중을 두는 것이 
예측 처리 이론의 일부다.

- 중요한 것은 여기서 정확성이란 진실성의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 예측 처리 이론에 의하면 뇌는 엄밀히 말해 예측 기계일 뿐 아니라, 정확성 가중치 부여 기계이기도 한 것이다.

- 정확성 높은 예측: 확신

- 최선의 추측이란 맞아떨어질 확률이 가장 높은 예측을 말한다.

- 확신은 가설일 따름이다.
- 헷갈리는 정보, 불안, 카오스,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은 불안을 줄이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망상적 확신은 ‘정상적’ 확신과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줄일 필요가 클수록 확신을 더 고집스럽게 고수하게 되며, 반대 논지나 
모순적 증거가 있어도 자신의 확신을 더 강하게 방어하게 된다.

- 우리 머릿속 예측 메커니즘의 가장 우선되는 원칙은 장기적으로 예측 오류를 줄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또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특히 힘든 결과를 초래하는 예측 오류를 말이다.

- 예측 오류란 우리의 내적 모델이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불안은 늘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 ‘당신이 모르는 세상보다는 당신이 아는 악마가 더 나은’ 것이다.

- 망상과 음모론에 대한 믿음은 동일하지 않다.
이 둘의 근본적 차이는 정신증적 망상은 늘 개인의 망상이라는 것이고, 
음모론은 다른 사람들과 확신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 음모론에는 긍적적인 사회적 동기가 깔려 있다.
일의 연관을 꿰뚫어 보는 사람들의 그룹에 속해 세상의 속사정에 대해 특별한 통찰을 나누는 것, 
그로써 멍청한 ‘보통 사람들’과 차별화된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 경험이 설명되지 않을수록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고, 그럴수록 우리는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에 이끌려 
그런 설명을 검증 없이 받아들인다. 경험이 혼란스러울수록 설명이 주는 안도감이 커지고, 
그렇기에 사실이 그에 배치되더라도 새로 얻은 통찰을 굳게 고수한다.

- 심리적으로 볼 때 예측 메커니즘상의 개인적 차이는 소위 ‘불확실성 감내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격 심리학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능력을 말한다.

- 높은 각성 상태에서는 지각이 생성될 때 내부 모델의 예측에 덜 의존하고, 대신 감각 데이터에 더 많은 비중을 부여한다.
- 뇌는 그렇게 예측 기계가 되어 내적 세계 모델과 주어지는 감각 데이터를 끊임없이 비교해 세계상을 구성한다. 
이런 비교에서 뇌의 제일가는 모토는 최대한 진실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기에, 
인식적 비합리성이 생겨난다.

- ‘존재’를 ‘당위’로 연결시켜 그릇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개인적, 세계관적, 종교적, 혹은 그 밖의 이유에서 어느 정도로 유전자의 생물학적 명령에 
굴복할지 결정할 수 있다.

- 진화론적 인식은 갖가지 생명 현상에 대한 설명의 단초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을 정당화 하는 근거로 오용되면 안 된다.

- 우리는 이런 유전자에 복종할 필요가 없으며, 무엇보다 이기적 유전자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끌어다 대지 말아야 한다.
- 버그가 아니라 특성이다!
It's not a bug, it's a feature.
- 자유를 확용해 능동적으로 확신을 의문시하고 비판적으로 검증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확신이 다른 사람들의 확신과 충돌할 때는 그래야 한다.
무조건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이 늘 가설일 따름이며, 우리가 확신을 고집하는 것에는 진화론적으로 우리 안에 깊숙히 심겨진 이유가 있다는 걸 늘 의식해야 한다.
이런 이유가 우리가 확신을 고집하는것이 정당하다는 구실이 되면 안 된다.
이런 이유는 다만 우리가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설명해주는 것이며, 
아울러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우리가 보기에는 ‘정신 나간’) 확신을 
고집하는 경향도 설명해준다.

- 확신에 대한 이런 설명이 자신의 굳은 확신을 자기비판적, 자기 성찰적으로 보고 타인의 확신에는 관대한 태도를 보일 수 있게끔 하기를 바란다.

- 합치될 수 없는 확신들이 충돌할 때는 과학적 인식과 원칙을 우선적으로 붙잡으라고 권하고 싶다.

- 과학이 완벽하게 돌아가지도 않고, 모든 중요한 질문에 답을 줄 수 없을지라도, 과학이라는 시스템은 
인식적 합리성 원칙을 표방한다. 데이터를 도구로 가설을 검증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명확함을 추구하고, 가능한 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과학의 목표다.
- 우리는 확신을 바꾸는 것을 유약함의 표시라고 느낀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뒤흔들고, 
새로운 증거로 인해 확신이 계속하여 ‘흔들리게끔’ 하는 것은 사실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건설적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다.

소감

지옥의 방어 화법.
반박 당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어떤 발언을 하면서 받을 오해 가능성들을 선제적으로 해명한다.
물론 나도 자주 취하는 화법이지만 모든 글이 이렇게 점칠되어있다 보니 피곤하다..
거울 치료 당했다.
화자의 안정감에는 크게 기여하겠지만 독자로써는 부담스러웠다.
번역 투의 문제도 이 문제에 일조를 한 것 같다.

내용상으로는 흥미롭게 느껴졌다.
신경학적 관점에서 그리고 인간의 진화와 생존 관점에서 우리가 단순히 “정신적 문제” 라고 치부되는 것들이 세부적으로 더 작은 범위로 구분이 될 수있고,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오히려 그 당사자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뭘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이상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여전히 이유는 이해하고 싶지않고 내 생각은 그렇게 동작하진 않지만,
그들이 왜그러는지는 뭘 저울질해서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된건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8장에서 언급되었듯이 말이다.
”상대방의 확신이 내 눈엔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왜 그렇게 확신하는지 이제 알겠어.
그래서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어.“

다만 이 모든 내용들의 분류와 설득의 결론으로 작가가 이야기 하는,
확신의 충돌하는 경우 대화하기를 포기하지 말고 질문하고, 배우기를 시도하고 상대가 내가 질문함으로써 스스로 모순에 직면하여 해결 될 가능성까지 생각해보라는 말에는 너무 나이브한 주장으로 보인다.
내 경험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질문에서 스스로의 모순을 찾아내지 않고, 그냥 강하게 주장하고 끝내버리곤 했다.
또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마주하게 되면 화를 내거나, 이 이야기를 한적이 없는 것 처럼 행동하는 경우들을 보아왔는데..
이것 또한 내가 너무 포기하고 평균 이상 효과에 사로잡혀 있는건지는 모르겠다만..

하긴.. 그치만 되돌아 다시 생각해보면 내 경험적으로도 이런 경우를 맞닥뜨렸을 때 포기하지 않고 많은 경우 대화를 시도해 봤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도가 실패해도 기분이 딱히 좋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시도한 것 자체를 후회한적은 없는 것 같다.
세상에 시니컬해지지 말라, 다정해라. 라는 말이 옳은 가치인 것 같긴하네

완독까지는 매우 오래 끌었지만 훌륭한 인사이트가 있는 책이었고, 공감가는 문구들이 많아 즐거웠다.